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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려고 쓰는 문화예술이론) 미셸 푸코, 마르쿠제

가로이 2021. 9. 15. 15:29

안녕하세요, 가로이에요.

리딩의 양이 너무 엄청나서 정리를 하는게 너무 오래걸리네요... 죽고팡...

이번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독일의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Herbert Marcuse)의 페이퍼 서문을 살펴보려고 해요. 

먼저 미셸 푸코는 누구일까요? (이름은 주구장창 들었으나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지 전혀 몰랐음...) 

푸코는 지식은 시대마다 재구성되는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치밀한 사료 분석을 통해 한 시대나 개별적인 사건의 분석에 주목한 철학자라고 해요. 17세기까지 서구인들은 보편적이고 유일무이한 사고 방식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이 굉장히 중요했는데요, 그러면서 '광기'는 방해 받거나 어지럽혀진 생각이 아니라 이성, 생각 밖에 있는 타자로 여겨졌어요. 그냥 미친거지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게 아니다! 이런 거죠. 하지만 푸코는 이런 서구적 사유의 한계에서는 불가능한 다른 사유가 있다고 주장해요. 지식은 영구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고, 외부의 조건들 때문에 특정 시대에 진리로 통용될 뿐이라는 거죠. 각각의 시대에는 우리의 지식을 구성하는 거대한 인식의 틀이 있는데, 이를 푸코는 ‘에피스테메(epistēmē)’라고 불렀어요. 역사는 불연속적이고, 우리는 곧 지워질 거라고 말해요. 이후에는 감옥의 역사를 분석한 <감시와 처벌> 이라는 책을 냈는데, 오늘 주로 살펴볼 내용은 이 책과 관련된 내용이에요. 

 

 

'판옵티콘 (Panopticon)'이라 불리는 이런 형태의 감옥을 처음 설계한 사람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 (Jeremy Bentham)이에요. 원형으로 둘러싸여진 감옥의 중앙에 위치한 감시탑에서 감시자들은 그 주위의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지만, 중앙의 탑은 어둡게 되어있어, 죄수들은 감시자가 존재하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게 설계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죄수들은 감시자들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압력을 느끼게 되죠. 사람이 아닌 환경에 의한 감시라고 볼 수 있겠어요 (간수, 개꿀!) 

벤담의 건축물의 의미를 감시를 바탕으로 한 권력의 흐름으로 확장시킨 것이 바로 푸코인데, 근대 사회에 들어 인권의 개념이 대두되면서 절대왕정 시기와 달리 권력의 형태에는 변화가 필요했는데, 현대사회의 권력의 근간은 '감시'에 있다는 의견이에요. "나는 너를 볼 수 있지만, 너는 나를 볼 수 없다." 에서 오는 불안함이 권력의 감시라는 것이죠. 나를 감시하는 도구가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권력이다! (흠... 그런가?) : A revolutionary discovery in the order of politics 

어쨌든, 이 페이퍼는 푸코와 Jean-Pierre Barou라는 철학자의 대화를 담은 기록물이에요. 주로 바로우는 질문을 하고, 푸코가 대답을 하죠. 먼저 판옵티콘에 대해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지, 어떤 생각인지를 묻는데, 푸코는 임상의학의 기원을 연구하던 중 18세기 병원의 건축 설계를 접하게 돼요. 개인과 사물의 몸 전체를 완전히 볼 수 있다는 것 (total visibility of bodies)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히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환자들은 위생을 위해 서로 접촉을 최대한 피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공기의 순환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환자를 감시하면서 그들끼리 분리시키는 것이 동시에 가능할까? 하는 것이죠. 그 다음으로 푸코는 형법을 공부하는데요 (참 힘들게 산다...) 여기서 감옥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해요. 벤담은 1751년 만들어진 파리의 Military Academy의 기숙사(!!!)를 다녀온 형제에게서 판옵티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하지만 푸코는 19세기 권력을 작동하게 했던 것은 'principle of visibility' 쉽게 말해 권력자의 시선 뿐 아니라 훨씬 복잡한 이해 관계가 있다고 지적하죠. 

18세기 정치 기구로서의 건축물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푸코는 18세기 말의 건축물은 인구 증가와 건강, 도시화의 문제의 해결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고 말해요. 그 전에 설계되었던 궁전이나 성당 같은 경우에는 주권 권력과 신의 신성함을 보여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18세기 말부터는 공간을 구성할 때 정치와 경제 모두를 고려해야하게 된 것이죠. 1830~1870년 노동 계층 가구의 주거 공간의 변화도 주목할 수 있는데, 이전에는 잠을 자고, 먹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의 뚜렷한 구분이 없었다면, 이 시기에는 각 공간에 특별한 목적을 부여하고 나누는 시도들이 일어나요. 이러한 "공간의 역사와 변화"는 "힘의 형태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고 하네요. 

"In short, space was analyzed either as the ground on which people lived or the area in which they existed; all that mattered were foundations and frontiers." 

푸코는 '성'(sexuality)의 작동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설명하는데, 이러한 notion of sexuality가 이미 건축 설계 구조, 감시 구조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해요. 예를 들면, 군대에 "동성애나 자위 금지" 라는 내용이 벽에 써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고요. 

18세기 말에 들어서 청결과 건강, 위생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고 의사들의 역할이 커졌는데,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의 위치 (location)가 통제되기 시작해요. 의사들은 공간의 4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데 1. 땅 자체의 문제 (기후, 토양, 습도 등) 2. 공생의 문제 (인구 밀도) 3. 사람과 사물의 공생 문제 (물 부족, 공기 순환, 도축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생 (도시화, 주거 문제, 이주 문제, 전염병 등) 였어요. 

다시 벤담으로 돌아와서, 벤담은 당시 'accumulation of people', 인구 문제에 맞닦뜨려요. 경제학자들은 부의 분배 문제에 더 초점을 맞췄지만, 벤담과 같은 사회/철학자들은 '힘, 권력'에 더 집중했죠. 푸코는 벤담의 생각이 루소의 주장과 상호보완적이라고 말해요. 벤담은 시선의 문제를 제시했는데, 벤담에게 있어서 시선이라는 개념은 지배계급의 관찰 시선이에요. 즉, 힘의 형태는 'always and everywhere observant', 언제 어디서나 관찰 가능하다, 는 것이고, 이 점에서 루소와 비슷하대요. (왜?)

"Each Comrade becomes a guardian." 

위의 문장은 벤담의 판옵티콘 아이디어에서 인용한 문장인데요, 푸코는 아마도 루소가 저 문장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취할 거라고 말해요. 왜냐면 루소는 그의 책 <L'emile (에밀)>에서 그의 튜터(guardian)가 감시자이면서 동시에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거든요. 

오늘날 우리는 (그리고 푸코의 시대 사람들은) 벤담의 판옵티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겠지만, 오히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사람들은 이 감옥 설계가 인도적라고 평가했다고 해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 푸코는 여론 (public opinion)을 꼽는데요, 혁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observing gaze', 관찰하는 시선이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효과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이런 관찰과 시선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 있었겠죠? 이후 파리의 계몽 서클들에서는 병원과 감옥이 대화의 화제가 되었는데, 감옥의 위생이 너무 최악이라 도저히 안에서 살 수가 없을 정도라는 것을 인식했고, 의사들은 'degenration of bodies' 의 문제를 꺼냈죠. 프랑스 혁명 이후로 'establishment of humanity',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에요. 

18세기 후반부는 암흑기였죠. 사람들을, 진실을 뚜렷하게 볼 수 없게 만드는 모호한 막과 어둠의 공간에 대한 공포가 팽배했어요. 사람들은 사회에서 이런 공간들을 모두 없애고 싶어했는데, 수도원과 같은 종교적인 공간이나 병원, 성, 감옥과 같은 공간들을 없애지 않으면 새로운 정치적, 도덕적 질서가 세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높은 벽이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 지하 던전, 이런 보이지 않는 공간들을 모두 투명하게 드러나게 함으로써 익명의, 공동의 관찰하는 눈으로 바로바로 권력이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로 하는 'opinion'의 시대가 온 것이죠. 

푸코는 판옵티콘에서 두 가지가 작동한다고 말해요: observing gaze; 관찰하는 시선과, internalization; 내면화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인식하는 상태). 이게 도대체 뒷 문장과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하게도 권력은 대가 없이는 작동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권력의 값은 무엇이냐, 경제적/정치적으로 모두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얼마나 많은 간수들이 필요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에서부터 만약 너무 강하게 사람들을 압박한다면 반란이 일어날 것이고, 간섭을 너무 적게 한다면 불복종과 저항의 움직임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적절하게 사람들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정치적인 균형이 필요했죠. 범죄자들을 엄청 적게 잡아넣는 대신, 형벌을 세게 때린다거나 하는... 나중에 이런 18세기의 사법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결과에 비해서 폭력의 값이 너무 비쌌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럼 싼 값에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은? (continuous form of power at practically no cost!) 무기도, 폭력도 없이? 싸다 싸! 답은 아시겠죠? 짜잔, 벤담의 "observing gaze"! 이러한 형태의 권력의 작동 방식에서, 힘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아요. 권력을 행하는 사람이 동시에 권력에 굴복하게 되는 쌍방의 구조이죠. 19세기 사회에 새롭게 만들어진 사회 구조의 주요 특성이 이거라고 생각한대요. (Power is no longer substantially identified with a particular individual who possesses it or exercises it due to his social position. Power becomes a machinery controlled by no one.) 

근데 사실 벤담은 이 판옵티콘 구조에 별로 자신이 없었대요ㅋㅋㅋ 그리고 관리감독의 효율성 문제가 사회 여기저기에서 심각했는데 학교, 군대, 공장 등에서 전부 문제가 있었지만 교회에서는 아직 규율이 있었어요. 특히 여성 노동력이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의 시대상에는 수녀들이 큰 역할을 하는데 공장 규율이나 병원에서의 관리감독직으로 수녀들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근데 여기서 잠깐, 벤담은 그 가운데 탑에 누구를 넣으려고 했을까요? 넹, 자기도 모른답니다! 왕처럼 절대권력을 행할 수 있는 주체가 더이상 없어졌으니까요. 뭐 신 정도...?ㅎㅎ 어떤 사람에게 이런 시선의 권력을 줘버리면 다시 절대왕정으로 돌아가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이런 권력의 이동/흐름과 불신이 계속 작동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권력이 분산되게 되는 것죠. 남는 인력, 없다! 이런 권력 장치의 발전을 인식하지 못하면 자본주의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가 없을 거에요. 

The summit and the lower elements of the hierarchy coexist within a relationship of reciprocal support and conditioning: they "hold together". (쉽게 말해 규율을 만드는 사람이나 지키는 사람이나 결국 상호보완적으로 나눠먹고 산다~ homogenize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면서 각자의 양상(modality)을 만들어 나간다) 

권력이 생산성이라는 단어와 함께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이 현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 microcosm, 미시사회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산업화와 함께 자본이 축적되었지만, 이런 종류의 권력의 이동은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네요? 그 이유는 'profit', 이익 때문이라는데... (이해 못함)

Public opinion represented a spontaneous reactualization of the social contract. They failed to recognize the real conditions of public opinion, the "media". They failed to understand that the media would necessarily be controlled by economic and political interests. 

미디어와 저널리즘의 등장을 간과한 18세기 개혁가들과 19세기 사람들... 또 벤담의 프로젝트를 비현실적으로 만든 다른 요소는 사람들의 저항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간과했다는 점이에요. 19세기 'Holy Monday' (매주 휴일을 만들기로 시위한 공장 노동자들) 등 산업 시스템에 저항하려는 시도들은 꾸준히 있어왔어요. 이외에도 저항하기 위한 micro-powers들은 계속해서 있어왔죠. 이런 관리감독과 순종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이전부터 강제되어 왔는데, 남자들에게는 달랐어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공장 노동자들에게 이런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래서 노동자 대표가 동료들의 이익을 챙김과 동시에 또 동료들을 감시하는 역할도 같이 수반하면서 공생해왔죠. 사장한테 무슨 기계 사줄때까지 일 안하겠다고 선언한 직원이라거나, 등등 이런 예시는 너무 많아요. 

The analysis of machines of power does not seek to demonstrate that power is both anonymous and always victorious. Rather we must locate the positions and the modes of action of everyone involved as well as the various possibilities for resisting and launching counter-attacks. 

어떻게 struggle이 발전해왔는지, 힘의 관계의 중심부에서 기능해왔던 이 struggle은 결코 단순하지 않고 실제로 작동되는 process는 너무나도 복잡하기 때문에 간단히 설명될 수 없대요 (너무 무책임쓰...) 어쨌든, 푸코는 벤담의 판옵티콘은 유토피아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당시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회와 시스템을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끝맞치네요.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감시자를 몰아내고 수감자들이 타워를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그게 과연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요? We never know~

자 다음 헤르베르트 마르쿠스! 

역시 이 사람도 도구적 이성에 대해 짚고 넘어갑니다. 마르쿠제는 비인간적인 합리성을 비판하면서 생산성과 욕구를 분리시키는 행위를 비판했는데요, 동질성에 대한 위협은 줄어들고,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사회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여러 다양한 목표와 가치들, 열망들이 저항하는 인간에게 출현하면서 "The Great Refusal", 기업과 자본주의에 대한 대규모의 저항이 발생했다고 주장해요. -> 긍정!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쿠바, 베트남, 중국에서의 사회주의 행정부를 향한 저항은 같은 자극에 의해 발생했어요: Liberation, 해방에 대한욕구이죠. 

"But beyond these limits, there is also the space, both physical and mental, for building a realm of freedom which is not that of the present: liberation also from the liberties of exploitative order -- a liberation which must precede the construction of a free society, one which necessitates an historical break with the past and the present."

간단히 말해, 자유의 영역인 liberation은 자유로운 사회의 구성에 선행하는 것으로 post-present의 역사적 break을 필요로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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